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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이 낮을 수록 남의 불행을 즐긴다.

남의 불행에 속으로 고소해 하는 심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연구진은 심리학에서 `샤덴프로데'(Schadenfreude)라는 용어로 불리는 이런 감정이 우월한 상대에 대한 질투심을 누그러뜨리고 자기긍정을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미국 심리학회가 발간하는 `이모션’ 최신 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여자 대학생 40명과 남학생 30명을 대상으로 자신감을 평가한 뒤 누구 나 부러워할 자리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은 이른바 `잘 나가는’ 대학생의 면접 기록 2건을 읽도록 했다.

이어 이 학생의 지도교수가 학생의 연구에서 큰 결함을 발견했다고 밝히는 다른 면접 내용이 소개된다.

그 다음 피실험자들에게는 자신의 `샤덴프로이데’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다섯개의 표현 중 동의하는 것에 표시하라는 주문이 주어진다. 예를 들면 “그에게 일어난 일을 즐겼다” “속으로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등이다.

실험 결과 자신감이 낮은 학생일수록 잘 나가는 학생에 더 위협을 느끼며 더 강 한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신감의 정도를 불문하고 위협을 많이 느끼는 학생일수록 샤덴프로이데 를 더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이어 피실험자의 절반에게 그들의 의견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주어 자신감을 북돋워 준 뒤 같은 면접 기록을 다시 읽도록 했다.

이 때 자신감이 낮은 학생들은 여전히 샤덴프로이데를 더 많이 느꼈고 여전히 성취도 높은 학생에게 위협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신감이 높아진 학생들은 질투 대상 학생의 실패에서 전보다는 고소함 을 덜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자신감이 낮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기분이 나아지려고 애쓰며 이때 남의 불행을 보면 샤덴프로이데를 느낀다. 이 연구에서는 사람들의 자신감이 높아지 면 굳이 남의 불행을 보고 기분이 좋아질 필요가 없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 혔다.

이들은 동료의 작은 실수에 고소함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평생 몇 차 례는 겪는 일이지만 연민이나 동정심 없이 남의 큰 불행에 깊은 만족을 느끼는 사람 도 있다고 지적했다.

나이와 자신감

이제 곧 한여름이다. 매해 지금 시기에 걱정하는 것은 올 여름은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걱정을하고 어쩔 수 없이 작년과 비슷한 방법으로 버텨낸다. 매해.. 매번 비슷한 시기에 반복적으로 걱정을 하고 자연스레 시간을 보냄에 따라 견뎌낸다.

겨울 역시 마찬가지이다. 올 겨울은 너무나 춥겠다라는 생각은 하지만, 아마도 작년 비슷한 시기에 같은 걱정을 하였을 것이다. 역시 옷을 두껍게 입던 옷을 껴입고 외출을 자제하는 등의 방법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반복되고 개선은 안되면 해법은 없다.

내 나이 이제 30대 중반을 바라보며 이와 비슷한 오류에 빠져 있음을 부쩍 느낀다.

흔하디 흔한 페이스북의 자신감을 복돋아 주는 문구라든지 이곳 저곳에서 성공과 출세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해묵은 진부한 이야기에서 감동을 전달하려 애쓴다. 그것들 중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역시 없지는 않다. 하지만, 순간. 그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는다.

한해 두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상 돌이켜보면 큰 변화는 없다. 다짐을 하더라도 혹은 굳게 맹세를 한다 할지라도 결과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주변인들도 마찬가지일까?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버티는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상황이며 과정 중. 여유를 찾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유희를 즐긴다. 버티는 것은 삶이 아니고, 유희는 삶이며 시간은 붙잡을 수 없으니 기계 처럼 살다 이따금 가뭄에 말라버린 저수지의 붕어들이 산소가 모잘라 수면위에서 발버둥 치는 것과 같이 억지로 억지로 살다 가끔 사람 답게 살며 고됨을 잊는다. 어느 누군가는 그 순간을 영원 할 것처럼 포장하고 원치 않는 이들 조차도 알게끔 동네 방네 소식을 전한다. 그의 삶에 있어서 사람 다운 때이니 그 때의 기록을 놓칠 수 없기에…

어떠한가? 나이. 그저 삶이 저것 뿐인가? 살만큼 살아보았다는 이들의 조언과 훈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시대가 다르다.

그저 이렇게 버티는 것이 전부인가? 매해 한번쯤 나 역시 중2병에 걸린 사춘기 소년과 같은 허무한 고민을 한다.

요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이에 대한 고민을 한다.

도전을 하기에는 나이가 걸리고, 가만히 주저 앉아 있자니 아직은 젊다는게 마음에 걸린다. 억지스럽게 용기내어 도전하려니 과거의 실패가 나를 옭아 맨다. 악마가 속삭인다. “어짜피 실패해 그냥 포기해”

정말 그러할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주저하고 망설인다. 오랫만에 불을 지핀 열정을 사라지고 도데체 무얼 계획하고 행하려 했는지 기억조차 안날 정도로 다른 재미난 것들에 빠져 시강을 낭비한다.

이게 삶일까? 나 역시 위와 틀릴 것이 없다. 에세이지만 일기스러운 글이다. 위와 같은 고민을 하기에 배설하듯 글을 남겨 보는 것이다.

우리? 아니 나는 어찌 하여야 하는가?

그저 이렇게 가만히 시간을 축내며 꿈을 포기하고 목적을 선택하며 기계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전부인가? 어릴적 나름 값진 인생이 여겼던 이 시간들이 그저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것인가?

나만 이러한가?

나이를 먹는다. 누구나 그러하다. 허나, 삶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다르다. 진취적이냐, 주체적이냐, 공격적이냐, 관조하느냐 등의 차이는 있다. 그래도 나름의 목표는 다들 있을 것이다. 아쉬운것은 나이를 먹는 것 만큼 자신감은 줄어든다. 무모한 용기 조차도 소멸되어버린다. 다시금 불을 지피려하면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간다.

어찌해야 하는가? 포기해야 하는가?

뻔하고 진부하지만 포기란 없다. 행해야 한다. 해내야 하고, 그것이 삶이라 여긴다. 물론 이런 자극적인 삶도 좋지만 반대의 정적인 삶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라는 것 그 자체가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 매우 잘못 되었다 여긴다. 이는 악이고 죄이다.

나는 내 삶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틀렸다. 말로만 그럴싸한 계획을 세웠을뿐 결국 버티는 삶이 전부이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쳐도 서서히 잃어가는 자신감에 그저 공상과 망상으로 끝을 내곤 한다.

바꿔야 한다. 그래도 바꿀 수 있다.

발전하여야 한다. 그래야 떳떳할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 하더라도, 과거 실패가 겹겹히 쌓여 있다 할지라도 행해야 한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얻는 것 역시 없다.

얻고자 한다면 행해야 한다. 사소한것 부터….

아직은 젊다. 아니, 10년뒤 20년뒤 우리 모두는 젊을 것이다. 그러니, 나이의 무게감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비차함을 느끼고 걱정하며 시간과 강점을 낭비하지 말자. 꾸준함을 이기는 것은 없다고 하더라, 행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 시간이 3년 혹은 5년 더 나아가 10년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서건 1등을 할 수 있다 생각한다.

젊다. 비교의 상대는 없다. 그저 젊다. 그것 만으로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 발전 할 수 있다.

단, 전제 조건은?

just do it!